구&구 2018. 5. 30. 14:28




나는 우리 증조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어떤 증조할아버지를 만났고 어떤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할머니이기 전의 아줌마이던 시절, 아가씨이던 시절, 소녀이던 시절을 모른다. 할머니가 소녀 시절 밭을 매고 있는데 머리 위로 일본의 제트비행기가 지나가서 엎드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우리 할머니의 유년기가 국사책에서 글로만 봤던 일제강점기구나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가 꽤 젊었다고 부를 수 있는 시절에 어떤 가치관을 갖고 계셨는지 여전히 모른다.


심지어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엄마도, 내 기억에는 아줌마 이후인 엄마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나는 삶의 무의미함에 빠지게 된다. 

내 자식, 그러니까 내 다음 세대부터는 아무도 '지금의 나'를 모르게 된다. 

내 손자, 다다음 세대부터는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모르게 된다.

내가 흙이 되고 나면 아무도 내가 살다간 것을 모르게 된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오히려 나는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것, 어차피 마지막은 죽을 것

재미있는 일을 훨씬 많이 해도 된다.

쉬고 싶으면 쉬고  

뛰고 싶으면 뛰고.